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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율 관세정책 전개 (정치 흐름, 공화당 경제정책, 금융 불안정)

by 여유로운 부자되기 2025. 4. 18.

1920년대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보수화가 동시에 진행된 시기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관세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집권당이던 공화당의 경제 철학과 맞물려 있었으며, 고율 관세 정책은 곧 국제 금융 불안과 무역 질서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1920년대 미국 관세정책을 정치 흐름, 공화당의 경제 기조, 그리고 금융 불안정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분석해봅니다.

정치 흐름과 관세정책의 상관관계

1920년대 미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주의의 부활과 고립주의의 확산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국제 정치와 군사적 개입에서 물러나며 자국 중심의 정책을 강화했고, 이는 경제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고율 관세 중심의 보호무역 정책이었습니다.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워런 G. 하딩이 승리하며 공화당 정권이 다시 집권했습니다. 하딩 대통령은 '정상으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를 내세우며 전쟁 전의 내정 중심, 기업 친화적 환경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고, 이는 관세정책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후 1923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192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공화당 정권은 연속적으로 유지되며, 일관된 보호무역 정책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 아래 1922년 포드니-맥컴버 관세법이 제정되어 평균 관세율이 38.5%까지 인상되었습니다. 이는 공화당이 산업 보호와 국내 생산 촉진을 위해 추진한 대표 정책으로, 정당 이념이 경제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이 시기의 공화당은 시장 자율을 강조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했고, 동시에 외부 경쟁은 차단하려는 모순적인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공화당 경제정책과 보호무역 기조

공화당은 1920년대 내내 시장 중심, 기업 친화, 재정 건전성을 경제정책의 3대 기조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원칙을 내세워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개입한 분야가 바로 무역과 관세 정책이었습니다. 공화당 정부는 국내 산업을 외국의 저가 상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율 관세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중서부 농민과 제조업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1922년의 포드니-맥컴버 관세법은 공화당 경제정책의 결정체였습니다. 이 법은 대통령이 외국과의 비교생산비를 기준으로 관세를 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으며, 철강, 석유, 섬유, 농산물 등 주요 산업에 대한 수입 억제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이는 수입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여 미국 내 제품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장치였습니다.

공화당은 이 같은 정책을 통해 국내 고용과 산업 생산을 늘리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제 무역의 위축을 가져왔습니다. 미국이 수입을 줄이자, 다른 나라들도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이는 미국의 수출 산업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금융 불안정과 관세의 연쇄 효과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대폭락은 대공황의 신호탄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존재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무역 불균형, 외국 자본 유출입 불안, 과잉 신용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 바로 1920년대의 고율 관세 정책이었습니다.

고율 관세는 미국 시장을 외국 제품으로부터 보호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수출길을 막는 부메랑 효과를 낳았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 후 미국에서 자본을 빌려 회복을 꾀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관세 인상은 이들 국가의 대미 수출을 막아 자금 상환 능력을 악화시켰습니다. 결국 이는 유럽 금융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미국 은행들도 이에 따른 손실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금융기관들은 산업자본보다 주식과 부동산에 더 많은 대출을 집중하며 위험성을 키웠습니다. 관세 정책으로 인해 국제 무역이 위축되자 실물경제가 정체되었고, 투자자들은 점차 금융상품에만 의존하게 되었으며, 이는 버블 형성과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금융 불안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 법은 20,000개 이상의 품목에 평균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각국의 보복 조치를 유발했고, 국제 무역량이 50% 이상 급감하면서 대공황이 전 세계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관세정책은 당시 정치, 경제, 금융의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공화당 정부의 보수적 경제 철학과 보호무역주의는 정치 이념과 경제 현실이 맞물린 결과물이며, 이는 결국 국제 금융 질서의 불안을 초래하고 대공황의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 역시 보호무역과 정치적 양극화가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1920년대의 사례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안정된 경제를 위해서는 정파적 이익보다 세계적 균형과 협력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관세정책도 거시적 안목에서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