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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정책의 전개 (포드니법, 스무트홀리, 대공황)

by 여유로운 부자되기 2025. 4. 18.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보호무역주의에 기반한 고율 관세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법률인 포드니-맥컴버 관세법과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당시 세계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결과적으로 대공황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미국의 관세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변화했는지, 각 법률의 특징과 국제적 반응은 어땠는지,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이 대공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포드니-맥컴버 관세법: 보호무역의 시작

1922년 제정된 포드니-맥컴버 관세법(Fordney-McCumber Tariff Act)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된 시점을 상징하는 법률입니다. 이 법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자국 산업을 외국 상품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조치였습니다. 평균 38.5%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주요 수입품에 적용하면서, 국내 제조업과 농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쟁 중 공급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경제적 이득을 크게 보았고, 그 결과 전쟁 후에도 유럽보다 우위에 있는 산업 구조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포드니법은 그러한 의도를 제도화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미국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고율 관세에 맞서 보복 관세를 시행했고, 이는 미국 농산물과 공산품의 해외 시장 축소를 불러왔습니다.

무역 상대국들과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포드니법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첫 번째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법이 국내 산업 보호에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무역 질서를 악화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포드니법 이후 미국의 무역흑자는 급감했고, 세계 각국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적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글로벌 무역 붕괴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미국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 법은 2만여 개 품목에 대해 평균 6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시장에서 외국 상품의 진입을 거의 원천 차단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미 경기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이 같은 강경책이 도입된 것입니다.

스무트-홀리 법은 국내 농민과 제조업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즉각적으로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세계 주요 무역국들 간의 무역량은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및 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에 대한 수출 감소를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이 관세법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1929년 주식시장 붕괴 직후 세계 경제가 극심한 불안정성을 겪고 있었고, 국제협력이 절실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히려 고립주의적 행보를 강화한 것입니다. 그 결과 글로벌 교역은 거의 마비되었고, 미국조차도 수출길이 막히면서 실업과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었습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스무트-홀리 법이 대공황의 깊이를 더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법이 시행된 직후 수출입은 50% 이상 감소했고, 이는 세계 경제에 도미노처럼 파급되었습니다.

대공황과 관세정책의 재조명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은 단순한 금융 위기에서 출발했지만, 고립주의적 무역정책이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교훈을 남깁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국제 무역 시스템을 붕괴시키며, 자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1933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25%에 육박했고, 은행 수천 곳이 파산했으며,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경기 침체가 발생했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호무역주의의 극단적 실행이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합니다. 이에 따라 루즈벨트 정부는 1934년 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s Act)을 통해 관세를 완화하고, 외국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습니다. 이 시도를 통해 미국은 점차 무역의 장벽을 낮추며 세계 경제 회복의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1920~30년대 미국의 사례는 관세정책이 단기적인 산업 보호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무역 파트너와의 신뢰 붕괴, 국제적 협력의 약화, 경제 전반의 위기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글로벌 경제는 균형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무역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미국의 1920~30년대 관세정책은 보호무역주의의 상징이자, 국제 무역 붕괴의 대표 사례로 기록됩니다. 포드니법은 보호무역의 시작이었고, 스무트-홀리 법은 세계경제를 무너뜨린 강경책이었습니다. 이 정책들은 대공황이라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촉진했고, 이후 국제사회는 다시금 협력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속에서도, 과거의 역사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역은 단순한 숫자나 거래 이상의 ‘신뢰’와 ‘공존’의 시스템임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